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메소포타미아 문명 (문단 편집) === 신바빌로니아의 전성기와 멸망 === 신아시리아가 지나치게 혹독한 탄압으로 민심을 잃어 약해지자 남부의 [[칼데아인]] 출신 장군 나보폴라사르가 반란을 일으켰다. 나보폴라사르는 기원전 626년 고토 바빌론에 새 왕국을 세우고 100여년 만에 아시리아를 몰아내니 이것이 바로 [[신바빌로니아]]다. 신바빌로니아는 이란 고원에 생겨난 강대국 [[메디아]]와 손을 잡고 신아시리아를 공략했다. 이미 망조가 든 신아시리아는 무력하게 무너졌고, 기존 패권국 신아시리아를 무너뜨린 [[신바빌로니아]]는 그야말로 메소포타미아의 유일무이한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특히 신바빌로니아는 [[네부카드네자르 2세]] 시절에 급성장했다. 그는 메디아와의 [[정략결혼]]으로 동맹을 맺었는데 이 과정에서 왕비 아미티스에게 [[바빌론의 공중정원]]을 지어주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레반트]]의 [[유다 왕국]]을 정벌해 수많은 유대인들을 끌고 들어왔는데 이 과정이 그 유명한 [[바빌론 유수]]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 시절의 신바빌로니아는 명실상부 세계 최강대국 중 하나로 엄청난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c9e44377ce061987bd0a8cb2540c30ca.jpg|height=25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babylon3d.jpg|height=250]]}}} || || '''{{{#E4C77E 바빌론 왕궁의 복원도}}}''' || '''{{{#E4C77E 바빌론을 흐르는 [[유프라테스강|{{{#E4C77E 유프라테스강}}}]]}}}''' ||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단순히 정복 활동 뿐만 아니라 문화나 건축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43년이라는 오랜 재위기간 동안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물론 [[이슈타르의 문]], 바빌론의 성벽, '행진의 거리', [[바벨탑|에테멘앙키]] 같은 각종 지구라트 등 어마어마한 건물들을 지었던 것. 바빌론으로 끌려온 유대인들이 그 웅장한 모습을 보고 [[바벨탑]]의 전설을 생각해냈을 정도였다. 이때의 바빌론은 '''세계의 수도'''라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었으며 당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몰려사는 최대의 [[메트로폴리스]]였다. 그 문화적 영향력도 현대까지 매우 짙게 남아있어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 문명'하면 생각나는 대부분의 이미지들은 대부분 이 신바빌로니아의 것들인 경우가 많다. 그렇게 번영하던 신바빌로니아도 네부카드네자르 2세 사후 쇠퇴했다. 왕들이 허구한날 갈아치워지고 그나마 [[아시리아]]계 귀족인 나보니두스가 자리를 잡았지만 여전히 내부 불안이 상당했다. 나보니두스는 기존의 [[마르두크]] 신앙 대신 자신이 믿는 [[난나]] 신앙을 강화했고,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히자 아들 [[벨사자르]]에게 국정을 맡기고 10년 동안 대마 지역으로[* 현대의 사우디아라비아 지역이다.] 원정을 떠났다. 이때 자신의 아들인 벨사자르에게 왕권을 위임하고 대리를 맡기고 있었는데 바빌로니아의 불행은 저멀리 [[페르시아]]에서 [[키루스 2세]]라는 희대의 괴물이 성장하고 있었다는 것. 키루스 2세는 종주국이었던 [[메디아]]를 역으로 무너뜨린 다음 [[엘람]]과 구티인, 부유한 [[리디아 왕국]]까지 집어삼키며 괴물 같은 전투력을 자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나보니두스 역시 심각하게 여겨 직접 키루스 2세를 막으려 진군했지만 오피스 전투에서 아주 허망하게 패하며 완전히 몰락했다. 이렇게 신바빌로니아는 네부카드네자르 2세 사후 30년도 못가서 망해버렸다. 바빌론을 점령한 키루스 2세는 특유의 관용정책을 펼쳐 기존의 신앙과 문화를 그대로 용인했고 이는 바빌론 사람들의 불만을 크게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후 키루스 2세가 창시한 [[아케메네스 왕조]]가 들어서 몇 백여년 가까이 바빌론과 인근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지배하게 된다. 이로써 셈 계통 민족들이 주도하는 메소포타미아 국가는 막을 내렸고 이때를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끝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는 오래 지나지 않아 [[알렉산드로스 3세]]에게 정복되었고,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들이 싸운 디아도코이 전쟁을 거쳐서 [[셀레우코스 왕조]]가 지배하게 되었다가, [[파르티아]] 왕국의 지배 아래 들어간다. 파르티아 시대에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위치한 [[크테시폰]]을 수도로 삼아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번성하게 되며 [[파르티아]]가 [[사산 왕조]] 페르시아에 멸망하자 [[사산 왕조]] 페르시아와 [[로마 제국]]의 각축장이 된다. 사산 왕조는 남부와 중부의 대부분을, [[로마 제국]]은 메소포타미아 북부를 점령했다. 다만 로마 제국은 얼마 가지 못해 [[사산 왕조]]에게 빼앗겼고 사산 왕조가 망한 후에는 [[이슬람]]의 터전이 되었다. 이후 메소포타미아 일대는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아바스 왕조]] 아래에서 화려하게 번영했다. 하지만 기원후 651년 경 이슬람 전래 이후의 메소포타미아 일대는 사실상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의 큰 연속성이 없다고 보며, 이걸 넓은 의미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완전한 종결로 본다. 엄밀히 얘기하자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흔적도 없이 망한것은 아니고, 이란과 이집트, 그리스로마 문화와 융합이 되면서 이슬람 문명으로 융합된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